▶ 글 싣는 순서 |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⑪ '지금 바로 여기'…작은 극장에서 시작된 기후 연대 ⑫ 텀블러 500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뿐 ⑬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법…"멈출 수 없다면, 느리게 천천히" ⑭ "꽃을 보니까, 지켜주고 싶어졌어요"…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 ⑮ "가져와요 플라스틱 지켜가요 우리바다"…바다를 살리는 시민들 ⑯ 차 없이도 괜찮은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⑰ 김밥을 말며 아이들이 배운 건? '생태감수성' ⑱ "기후위기, 동물도 아픕니다"… 동물권 다룬 기후영화제 열린다 ⑲ 영화 <플로우> 본 아이들…"기후위기, 혼자선 못 이겨요" ⑳ "골칫덩어리 전선 뭉치들, 버리지 말고 가져오세요" (계속) |
재활용 될 수 있는 폐전선들. 박사라 기자 휴대폰 충전선·멀티탭, 그냥 버리기 아깝다
휴대폰 충전기, 멀티탭, 이어폰 줄…. 집안 곳곳에서 쓸모없이 굴러다니는 전선은 버리기 애매한 '골칫덩어리'다. 일반 쓰레기로 버리려니 마음에 걸리고, 분리배출 하려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대부분은 결국 소각되거나 매립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 속에는 재활용 가치가 높은 금속 자원, 특히 구리가 숨어 있다.
버려지던 전선을 모아 자원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순천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찾은 제로웨이스트 샵.
임이경 대표가 바구니 한가득 담긴 폐전선을 꺼내 보였다. 충전선과 멀티탭, 이어폰 줄이 서로 엉켜 있었다. 이 전선들은 지난 봄부터 시작된 폐전선 수거 캠페인으로 시민들이 직접 모아온 것들이다. 전국 제로웨이스트 샵과 서울도시금속회수센터가 함께하는 이 사업에서 샵은 지역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시민들이 집에서 모아온 충전선이나 멀티탭, 이어폰 줄을 들고 오면, 샵은 일정 무게가 쌓일 때마다 서울 센터로 모아 보낸다. 임 대표는 "아파트 분리수거장에는 폐전선을 따로 배출할 방법이 없다. 결국 일반 쓰레기로 버려질 수밖에 없던 자원들을 모아 자원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보조배터리, 무선 이어폰, TV 케이블처럼 전자부품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제품은 안전 문제와 복합재질 탓에 수거하지 않는다. 대신 충전선, 멀티탭, 유선 이어폰 같은 전선류만 가능하다.
시민들도 "버릴 데 없어 고민이었는데 수거해 주니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이와 함께 전선을 들고 오는 가족들에게는 현장 교육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샵에서는 우유팩, 페트병, 병뚜껑과 마찬가지로 전선도 일정량을 모아오면 종량제 봉투나 대나무 칫솔 같은 생활용품과 교환해 준다.
임 대표는 "시민들이 제일 많이 가져오는 건 역시 휴대폰 충전선이에요. 작고 귀찮은 물건인데도 집안 곳곳에 몇 개씩 쌓여 있다"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원순환을 배우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순천 제로웨이스트 샵에 모인 충전선·멀티탭 등 폐전선. 박사라 기자 순천서 모인 전선 뭉치, 서울에서 새 자원으로
시민들이 모은 폐전선은 서울도시금속회수센터로 향한다. 서울시가 운영하고 민간이 위탁받아 운영하는 이 센터는 시민들이 배출한 중소형 전기전자 제품을 모아 품목별로 분해·선별한 뒤 재활용 적격 업체로 보낸다.
서울도시금속회수센터 정유경 대리는 "우리는 직접 구리를 추출하지 않고, 품목별로 나눠 전문 재활용 업체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며 "전선은 모아진 것을 전문 업체로 보내 피복을 벗기고 구리를 추출해 다시 원료로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멀티탭도 플라스틱 부분과 전선 부분을 분리한 뒤 전선만 재활용 업체로 간다.
시민들이 캠페인을 통해 가져온 전선은 대부분 충전 케이블, 유선 이어폰, 멀티탭이다. 정 대리는 "이런 것들은 사실 시민들이 가장 버리기 애매해하는 품목"이라며 "캠페인을 통해 회수 애로 품목을 모아주니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센터는 연간 약 4천 톤의 폐가전을 처리한다. 이 가운데 지난해 캠페인을 통해 모인 폐전선은 865㎏이었다. 정 대리는 "재활용 과정을 거치면 86% 정도는 금속 자원으로, 나머지는 열에너지로 사용돼 거의 100%에 가깝게 재활용된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70여 개 샵이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진행되는 전선 수거 캠페인. 박사라 기자 폐전선 자원순환, 숲을 지킨다
폐전선을 재활용하면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리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해외 채굴 과정에서 산림 파괴와 유해물질 배출이 불가피하다.
정 대리는 "이미 쓰고 버려진 전선에서 구리를 회수하면 환경 파괴를 줄이고 자원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도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전기전자 제품 전 품목이 재활용 의무 대상에 포함된다. 지금은 50여 개 품목만 해당되지만, 전자담배·드론 같은 소형 전자제품까지 확대된다. 폐전선도 제도 안으로 들어오면서 배출·수거 과정의 혼란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여전히 수거 체계가 충분히 정비되지 못한 만큼 논의가 필요하다고 정 대리는 지적했다.
기업이 제품을 오래 쓰고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재생 원료 사용을 확대하는 것, 소비자가 고쳐 쓸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임 대표는 "사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도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이 제품이 재활용이 잘 될까, 분리배출이 편할까를 먼저 따지게 된다"며 "기업도 제품을 만들 때부터 재활용이 잘 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리는 "시민들이 소형 폐가전을 배출할 때 안에 남은 음식물이나 오염물을 제거하고 내놓으면 근로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폐전선은 가까운 제로웨이스트 샵을 통해 모아주면 된다"고 당부했다.
자꾸 쌓여만 가는 폐전선 뭉치, 이제 근처 제로웨이스트 샵으로 가져오면 된다. 근처 제로웨이스트샵은 서울금속도시회수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