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⑪ '지금 바로 여기'…작은 극장에서 시작된 기후 연대 ⑫ 텀블러 500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뿐 ⑬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법…"멈출 수 없다면, 느리게 천천히" ⑭ "꽃을 보니까, 지켜주고 싶어졌어요"…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 ⑮ "가져와요 플라스틱 지켜가요 우리바다"…바다를 살리는 시민들 ⑯ 차 없이도 괜찮은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⑰ 김밥을 말며 아이들이 배운 건? '생태감수성' (계속) |
6월 생태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김밥을 만들며 자연의 결실을 체험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김밥을 말며 '자연의 결실' 만나다
지난 6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전남 여수의 한 교회 교육관.
아이들이 정성껏 김 위에 밥을 올린다. 볶은 당근, 파, 노랗게 부친 계란, 우엉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 가지런히 얹는다.
"김밥 마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그림책도요."김밥을 다 만든 하린이와 소유(7)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날 진행된 활동은 여수 성동교회의 '생태놀이터'.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자연을 주제로 한 체험 수업이다. 아이들은 손으로 만지고, 먹고, 느끼며 생태 감수성을 키워간다. 땅과 꽃, 열매를 매개로 자연의 흐름과 삶의 가치를 천천히 배워가는 시간이다.
지난 4월 체험에서 씨앗공을 던지고 있는 아이들. 성동교회 제공 공기·씨앗·열매…자연 순환을 따라가는 체험 수업
생태놀이터는 올해 3월 시작됐다.
첫 달에는 공기청정식물인 모스이끼로 놀이를 한 후 액자를 만들었다.
4월에는 흙 60kg을 바닥에 깔고 씨앗공을 만들어 화단에 던졌다. 또한 딸기 모종을 심었다.
5월엔 꽃 놀이로 꽃잎을 모아서 염색천 놀이를 하고, 식용 꽃으로 떡을 만들었다. 꽃을 따기 전 "꽃아,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6월의 주제는 '열매'. 자연에서 온 재료로 김밥을 만들며 아이들은 계절의 결실을 손끝으로 배웠다.
활동은 주제와 관련된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시작됐다. 이날은 건강한 음식 선발대회에 참가한 채소들이 '김밥'이란 이름으로 한 팀이 되어 우승하는 이야기였다.
이후 도화지와 철사로 종이 김밥을 만들어보며 손을 푼 아이들은, 유기농 채소를 밥 위에 올리고 정성껏 김밥을 말았다.
생태놀이터 교사들은 매달 주제에 맞춰 직접 그림책이나 활동북도 제작해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그림책 활동을 맡은 이미지 교사는 "편식하지 않고 자연 재료와 친해지게 하자는 취지였다"며 "각기 다른 재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김밥처럼, 다양성과 조화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고 전했다.
이신혜 전도사가 생태놀이터를 진행하고 있다. 성동교회 제공 "자연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알아가기를"
생태놀이터를 기획한 이신혜 전도사는 예장통합 총회 교육부의 유아용 환경 교재 '환경놀이터'를 3년째 집필해오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꽃 냄새를 맡으며 자연을 오감으로 경험하길 바랐다"며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 전도사를 비롯한 유치부 교사들은 모두 본업을 가진 직장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사'라는 마음으로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나누는 이 시간을 위해 평일 밤마다 모여 준비하고 회의하며 활동을 함께 만든다.
활동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찾고, 놀이에 쓸 재료를 하나하나 손수 마련해가며 매달 프로그램을 완성해나가는 이들의 열정이 생태놀이터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꽃잎으로 염색천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성동교회 제공 종교 문턱 낮춘, 누구나 오는 배움터 '눈길'
더 특별한 점은, 이 프로그램이 교회에서 열리지만 종교적인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도는 선생님들끼리 조용히 시작할 때만 드리고, 활동 중에는 찬양 대신 '곰세마리' 같은 동요를 사용한다.
교회라는 공간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려는 배려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경험하고, 활동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교회 안 유치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오감놀이 활동에서 출발했다. 꾸준한 참여와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교회 안에만 머물기보다 지역사회로 활동을 넓히자는 뜻이 모여 시작됐다.
이날 참여한 14명의 아이들 중 일부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현수막을 보고 오거나, 인근 어린이집의 추천을 통해 참여한 이들도 있다. 생태놀이터가 특정 신앙 안에 갇히지 않고 지역사회 전체를 향해 열린 배움터라는 점을 보여준다.
성동교회 김현우 목사는 "다음 세대를 위한 돌봄과 실천이야말로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 활동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밀어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지역의 일원이라면, 예배당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동교회는 과거에도 인근 초등학생들에게 떡볶이를 제공하거나, 병원에 주차 공간을 무상 개방하는 등 지역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실천을 이어왔다. 생태놀이터는 그러한 노력 위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새로운 연결이 됐다.
지난 3월 공기청정식물인 모스이끼로 놀이를 한 후 액자를 만들고 있는 부모와 아이들. 성동교회 제공 "체계적인 구성 만족"… 부모들 한목소리
아이와 함께한 부모들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흙을 만지기 어려운 시대에 생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임주리 씨는 "세 달째 참여 중인데 프로그램 구성이 잘 되어 있고, 아이가 집에서도 즐거웠던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고 말했다.
김동규 씨는 "아이들이 나뭇잎을 따고, 흙을 밟는 경험 자체가 요즘엔 귀하다"며 "아이에게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4살 쌍둥이 딸과 함께한 임세미 씨는 "다양한 활동이 주제에 맞춰 연계돼 있어 유익하고 재미도 있었다"며 "다음 회차가 벌써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생태놀이터에 참가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꽃잎을 따며 자연을 체험하고 있다. 성동교회 제공 지역사회 응원 잇따라, 생태놀이터에 '큰 힘'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응원도 생태놀이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인근 병원과 약국, 어린이집에서는 포스터를 붙여주고, 학부모들에게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참여를 도왔다.
어린이집 원장이 먼저 나서서 프로그램을 홍보해주기도 했고, 한 달은 신청자가 너무 몰려 포스터 부착을 멈춘 적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생태놀이터는 7~8월 동안 방학을 갖고, 오는 9월부터 다시 이어질 예정이다.
교사들은 다음엔 어떤 놀잇감으로 자연을 풀어낼지, 아이들과 어떤 활동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함께 배워갈지 벌써부터 고민에 들어갔다.
기후위기 시대, 한 교회의 교육관에서 시작된 이 작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씨앗에서 꽃, 열매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처럼, 자연을 배우며 자라나고 있다.